제 2차 세계대전의 상징적인 인물이며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아돌프 히틀러.
독재자, 학살자 등 역사에 악명을 떨쳐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인물이지만, 그 행보에 걸맞지 않게 그는 한때 화가를 꿈꾸던 평범한 미대 입시생에 지나지 않았다. 총통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각종 영화나 음악에 관심을 갖는 등 미학적인 감각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는데, 그저 예술에 심취해 있던 평범한 청년이 어쩌다 독재자의 길을 걸었는지, 또 독재자가 된 뒤 그의 예술적 취향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이번 기회에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젊었을적 히틀러가 그린 그림들>
누구보다 엄격했던 히틀러의 아버지는 아들이 화가의 꿈을 꾸던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실업계 학교로 갈 것을 강요했고, 나름대로 반항의 의미인지 히틀러는 학교 수업엔 관심을 갖지 않은 채 틈틈히 스케치를 그리며 그림 실력을 키워갔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1903년, 히틀러는 자신의 꿈을 반대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번엔 어머니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화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1905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떠난 그는 번번히 미술대학 시험에서 떨어지기 일쑤였고 1907년 그의 어머니까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되어 힘든 나날을 보냈다.
다행히도 고아연금으로 어떻게든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던 그는 절치부심하여 19세가 되던 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다시 대학 시험을 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로 불합격 통보의 연속이었다. 그를 떨어뜨린 대학 교수는 '그림보단 건축에 재능있어 보이니 그쪽으로 가면 어떻겠느냐'며 조언했지만, 당시 건축가는 고학력 인재들에게만 허용된 직업이었으므로 이 또한 실현되지 않았다.
확실히 오늘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히틀러의 그림 실력은 준수한 편이나 구도나 색감이 독창성이 없고, 간간히 원근법에 어긋난 표현이 있다고 평가한 걸 보면 당시 히틀러를 떨어뜨린 대학 교수의 안목이 꽤 정확했다고 볼 법하다.
종종 혹자는그의 그림엔 사람은 간단하게만 묘사되고 건물 위주의 표현이 있다며 그의 그림에 인간혐오적 발상이 담겨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계속 인정받지 못한 것이라 하지만 글쎄? 딱히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그가 대학으로부터 계속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는 지나치게 고전적인 화풍에 집착하면서도 그마저 완벽하게 못했던 애매한 실력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나치의 주도로 열린 퇴폐미술전을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좌), 전시를 감상하는 히틀러(우)>
비록 미대 입시생 시절엔 대학 교수의 냉정한 평가에 꿈을 좌절했던 그였지만,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정계에 입문한 히틀러는 어느새 독일의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올랐다. 그 위치에 걸맞게 히틀러는 자신의 개인적인 잣대로 예술작품을 품평했는데 본인이 그토록 좋아하는 고전주의 미술은 '게르만적이다' 하여 순수 예술, 새로이 떠오르기 시작한 모더니즘 미술은 '퇴폐적'인 것으로 구분함으로서 자신의 예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결정은 당원들과 함께 의논하여 내린 것이라 하지만, 필자의 생각엔 그 당시 누가 감히 히틀러 앞에서 예술에 대해 소신발언을 할 수 있었을까 싶긴 하다.
독일에서 나름대로 국가적 예술관을 정립해나가던 히틀러는 '위대한 독일 미술전'과 '퇴폐미술전'을 비슷한 시기에 열었다. 전시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전자는 고전주의 작품을, 후자는 모더니즘 작품을 내새운 전시다. 이 상반된 주제의 전시를 국가가 주도해서 동시에 개최한 이유는 독일 국민들에게 보고 직접 느껴보라는 것이었다. 모더니즘 미술의 천박함이 독일을 병들게 하고 있으며 오직 순수한 고전주의 미술만이 이 나라에 품격을 더해줄 것이라는 메세지를.
히틀러가 총통에 자리에 앉자 그가 그리던 그림도 덩달아 비싼 값에 거래됐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내 그림을 봐줬으면 좋겠다'는 그의 젊은 시절 소망이 이루어졌음에도 그의 반응은 시큰둥하기 그지 없었다고 한다. 고가에 팔린 자기 그림을 보며 '이게 그 정도 가치는 아닌데'라며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그가 모더니즘 미술을 혐오했던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어쩌면 그의 혐오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창의적인 끼를 발휘하는 신진 작가들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르겠다.
<히틀러가 그린 것이라 추정되는 디즈니 캐릭터들>
미술 뿐 아니라 영화에도 조예가 깊었던 히틀러는 본인 저택의 개인 영화관에서 하루 종일 영화만 감상할 때도 있었다 한다. 놀랍게도 그가 즐겨보던 작품 중 하나는 독일어로 번안된 애니메이션 '백설공주'로 그 배경이 되는 동화가 독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하여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표면적인 이유가 무엇이건 그렇게 사악하고 악랄한 독재자가 이토록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을 즐겼다는 건 선뜻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일부러 저런 작품을 소비했다기엔 개인 영화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감상했다는 점, 누구보다 문화 검열에 앞장서던 심복 '괴벨스'가 히틀러에게 선물로 디즈니 작품을 보냈다는 점에서 그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는 건 사실인듯 하다
남들 몰래 디즈니 캐릭터를 따라 그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히틀러. 잔인한 학살자의 이면엔 인간적인 면모가 숨겨져있던 것일까? 반대로 생각하면, 그저 그림을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도 경우에 따라선 끔찍한 악인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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