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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계속된 공방, 천경자 미인도 위작 사건

by uriver 2020. 7. 1.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미인도(1977(추정))'

 

 때는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은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의 출품작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미인도'를 대량 프린팅하여 미술 애호가들에겐 물론, 대중들에게도 널리 선보였다. 당시 이 작품은 천경자 화백의 작품으로 소개된 탓에 그녀의 지인들이 '작품 잘 봤다'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는데, 이에 천 화백이 자신은 이 작품을 그린 적이 없다고 답하면서 기나긴 공방의 시작을 알렸다.

 

 당연히 작가 본인이 자기 작품이 아니라 하니, 이 사건은 그저 한 순간 해프닝 정도로 지나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작품을 소유하고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화랑협회 미술감정위원회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작품이 진품임을 주장하며 혼란이 일어났다. 당연히 천 화백은 이에 반박했으나 그녀의 나이가 칠순에 가까워 기억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감정을 마쳤다는 점을 들어 천 화백의 반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간에선 천 화백을 '자기 작품도 몰라보는 작가'라며 조롱했고, 이에 실망한 천 화백은 일시적으로 절필을 선언하며 1998년 큰 딸 이혜선 씨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2015년, 91세의 나이로 천 화백이 세상을 떠나며 다시금 이 논란이 수면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후에라도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했던 유족들의 노력이었을까, 1999년에 자신이 위작을 했다고 자백했던 권춘식씨의 진술 그리고 프랑스 유명 감정팀인 뤼미에르 감정단이 위작이 맞다고 판정한 것을 유족들이 근거로 들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왼쪽부터 권춘식 씨가 참고했다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 ,<고> <장미와 여인> <바리의 처녀>, 가장 오른쪽이 현재의 '미인도'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감정을 맡길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뤼미에르 감정팀은 그림의 부분을 1600여개로 단층으로 쪼개 분석한 뒤 미인도가 천 화백의 다른 작품과 일치하지 않아 진품일 확률이 0.0002%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이 위작범이라 자백한 권춘식 씨의 증언이 다시금 뒷받침되면서 이 논란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2016년, 권춘식 씨가 갑작스레 증언을 번복하며 사건은 다시 오리무중이 됐다. 후에 그는 자필로 다시 자신이 위작을 한 게 맞다며 전의 증언을 재번복했지만, 이미 두 번 발언을 번복한 그의 말이 제대로 된 증거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프랑스 감정팀이 내놓은 증거가 자신들의 자체적인 조사와 결과가 너무 다르다는 근거(뤼미에르 감정팀의 진품 확률은 0.0002%, 검찰 조사 결과는 4.01%로 차이가 크다)를 들어 사건을 종결시킴으로서 미인도는 진품으로 판정이 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인도를 둘러싼 공방은 끝나지 않았다. 검찰 측에서 주장한 4.01%라는 확률은 뤼미에르 감정팀과 똑같은 방법으로 천 화백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여 얻은 값이라 하는데, 뤼미에르 감정팀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검찰이 어떻게 뤼미에르 감정팀과 똑같은 소프트웨어를 확보할 수 있었냐는 의혹이 남게 된다. 이에 유족들은 다시 항고했으나 검찰측에서 기각하고, 다시 유족들이 항고 기각에 대한 재정신청을 하니 이 공방은 앞으로 더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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